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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石器時代) 본문
석기시대(石器時代)
[구석기 시대]
고고학상에 주요한 이기(利器)의 재료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는 3시기법(三時期法)이 있다.
즉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가 그것이다.
석기시대는 이중 제1단계이다.
그리고 영국의 고고학자 J. 러벅은 그가 쓴 〈선사시대 Prehistoric Times〉에서 석기시대를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로 처음 나누었다.
그러나 그후 영국의 L. 브라운에 의해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사이에 과도적인 단계로서 중석기시대를 두는 것이 제창되었으며, 20세기에 와서 중석기시대의 개념이 학계에 널리 쓰이게 되면서, 러벅이 주장한 '신석기시대'의 일부는 중석기시대로 분류되어 에르테뵐레 문화 역시 현재는 중석기시대로 분류되고 있다.
그리하여 석기시대는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구석기 시대는 석기를 다듬는 수법에 따라 전기 구석기 시대, 중기 구석기 시대,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세 시기로 나눈다.
전기구석기시대에는 한 개의 큰 석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다.
중기구석기시대에는 큰 몸돌에서 떼어 낸 격지( 여러 겹으로 쌓여 붙은 켜)들을 가지고 잘 손질을 하여 석기를 만들었으므로 크기는 작아지고, 한 개의 석기가 하나의 쓰임새를 가지게 되었다.
후기구석기시대에는 쐐기 등을 대고 같은 형태의 여러 개의 돌날 격지를 만드는 데까지 발달하였다.
[중석기시대]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크게 말하면 구석기 시대 말기, 즉, 약 1만 2천년 전에서 약 8천년 전까지)를 특별히 중석기 시대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약 1만 년 전에서 약 8천 년 전까지이다.
이 시대는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다시 기후가 따뜻해지는 등 자연 환경의 변화가 크게 일어난 시기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자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큰 짐승 대신에 토끼, 여우, 새 등 작고 빠른 짐승을 잡기 위해 활, 창 등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의 석기들은 더욱 작고 섬세하게 가공하였고(잔석기), 한 개 내지 여러 개의 석기를 나무나 뼈에 꽂아 쓰는 이음 도구를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 북한의 웅기 부포리와 만달리 유적, 남한의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의 최하층, 홍천 하화계리 유적 등을 중석기 시대의 것으로 본다.
[신석기시대]
영국의 고고학자 J. 러벅은 그가 쓴 〈선사시대 Prehistoric Times〉에서
석기시대를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로 처음 나누었다.
구석기시대가 홍적세에 속하는데 반해 신석기시대는 충적세에 속하며,
구석기시대에는 타제석기만을 사용했던 데 비해 신석기시대는 마제석기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석영의 일종인 플린트제의 정교한 타제석기도 사용했다.
장신구로서 자연금을 이용하는 일은 있었지만, 구리·철 등의 금속을 가공하는 지식은 없었다.
또 농경과 가축의 사육, 토기의 사용 등도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중에 러벅이 가장 중시한 것은 마제석기의 출현이었지만, 타제석기밖에 볼 수 없는 덴마크의 패총문화(에르테뵐레 문화)를 신석기문화로 분류했다. 중요한 것은 러벅은 자신의 구석기·신석기 개념을 유럽에 한하여 적용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후 그의 뜻과는 달리 이 개념은 세계 각지에서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영국의 L. 브라운에 의해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사이에 과도적인 단계로서 중석기시대를 두는 것이 제창되었으며, 20세기에 와서 중석기시대의 개념이 학계에 널리 쓰이게 되면서, 러벅이 주장한 '신석기시대'의 일부는 중석기시대로 분류되어 에르테뵐레 문화 역시 현재는 중석기시대로 분류되고 있다.
유럽, 아프리카 북부, 서아시아에서의 조사·연구의 진전은
홍적세에서 충적세로의 전환,
타제석기만에서 마제석기의 출현으로의 전환,
그리고 수렵·어로·채집에서 가축사육·농경으로의 전환이
모두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 정교하게 만든 타제석기가 신석기시대를 특징짓는 것만은 아니며, 칼·화살촉·낫으로서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도 중요하게 쓰였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위에서 기술한 3가지의 전환 중 지질학적·석기제작기술사적인 구분이 아니라
경제사적인 기준으로 신석기시대를 정의하는 방법이 영국의 V. G. 차일드에 의해 제창되었다.
그에 의하면, 앞의 구석기시대·중석기시대가 식량의 채집경제단계였던 데 비해
신석기시대는 식량의 지급자족을 위한 생산경제단계에 속하며,
산업혁명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이 큰 비약은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식량생산에 의해 생긴 여유는 마침내 전문기술자를 낳았으며, 결국은 계급의 성립, 도시·국가의 탄생을 촉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차일드에 의해 새로이 정의된 신석기시대의 개념은 범세계적으로 공통하여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식량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의 비약적인 발전이 지방에 따라서는 반드시 석기시대에 실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남시베리아의 알타이 지방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연해주(沿海州) 등지에서는 철기시대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신석기시대의 개념은 세계 각지에서 몇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
[신석기 혁명]
신석기 시대의 농경, 목축의 시작과 그로 말미암아 의식주 등 인류 생활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더 나아가 인구의 증가, 부의 축적 등을 통해 사회 기구에까지도 변혁을 초래하여 역사 시대로의 발전(또는 문명 발생)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