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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본문

白 樺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다음그다음 2005. 11. 6. 14:18

◼진달래꽃/김소월 1922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김소월 1925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운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는 길/김소월 1925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님의 침묵/한용운 1926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건너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맹세는 차다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신석정 1932('삼천리'에 발표)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1934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별 헤는 밤/윤동주 1941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서시(序詩)/윤동주 194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국화옆에서/서정주 1947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가슴을 맞대리까
입술을 붙이리까
손잡고 도란도란
귓속말을 바꾸리까
숫처녀의 치맛자락을
스쳐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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