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막사(문무대일기)
석양의 막사(문무대일기) - 1977. 9. 28. 수
작년부터 대학교 1학년 때 의무적으로 열흘 간 학생병영훈련을 받게 되어있었다.
금년이 두 번째로 실시되는 훈련인데 우리학교와 중앙대가 9월 16일부터 10일간 받게되어 군인 아닌 학생신분으로 입영하게 되었다.
1977년 9월 16일 금요일 날씨는 맑았다.
남한산성 기슭의 문무대 연병장에는 땅거미가 막 지려는 순간이고, 하늘엔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늦은 오후였다.
버스가 문무대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것은 지시봉을 들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의 교관, 조교들과 놀빛에 물들어가는 싸늘한 막사 뿐이어서 그야말로 삭막한 분위기에 아연 질색해버렸다.
내리자 마자 다구치는 중대장, 구대장 등
소지품 검사가 끝나고 내무반에 들어갔다. 분명 온돌방이려니 생각했건만, 마루바닥이 양쪽에 있고, 가운데는 통로, 벽쪽에는 사물함이 한쪽 벽에 10개씩 있었는데 거기에는 우리가 사용할 군복 등 일체가 정리되어 있었다.
완전한 군인 복장을 갖추고 보니 모두들 진짜 군인 같아 보였다. 더구나 머리까지 짧게 깎았으니 말이다.
연병장에 집합할 때 집합동작이 느리다며 넓디넓은 연병장을 대각선으로 선착순 돌릴 때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처음 써보는 묵직한 철모가 올려져 있어 머리가 띵하니 아파 왔다.
미리 가져온 약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처음 접하는 군대생활에 눈알이 핑핑 도는 것 같다.
저녁 먹을 때까지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이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올라오는 남한산 기슭의 문무대는 삭막하고 쓸쓸하고 희망 하나 붙일 곳이 없었다.
저녁식사가 나왔는데 보리가 반쯤 되나보다. 새까만 밥에 닭고기 한 점, 단무지, 국물이 나왔다. 보고는 못 먹을 것 같았으나 반쯤은 겨우 먹을 수 잇었다. 그것도 숟가락이 모자라 우리 중대는 기다렸다가 남들이 먹은 다음 그 숟갈로 먹어야 했다.
밤 9시에 일석점호를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는 침상 끝에 정렬하여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기다려야 했다. 우리 중대에서도 맨 끝 내무반이라서 나는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점호는 구대장이 청소상태, 관물정리, 인원점검 등을 하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아야 했다.
취침시간은 원래 10시로 되어 있으나 우리 내무반은 11시가 되어서야 드러누울 수 있었다. 도무지 잠이 안 온다.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여서 불꺼진 우리 8내무반에서 이야기 소리가 났다. 이것을 듣고 나타난 구대장의 호령, "8내무반 복장 그대로 연병장 선착순 집합"
넌링, 팬티 차림으로 허둥지둥 집합하영 팔굽혀펴기 등의 벌을 받앗다.
9월 17일 토요일이다.
6시에 기상이다. 어젯밤 잠도 설쳤건만 늦게 일어나면 또 무슨 고통스런 벌이 기다릴까봐 미리 옷을 다 입고 기나 나팔소리 만 기다리고 있었다.
식기를 들고 중대 앞에 모여 일조점호가 시작되었다. 인원점검, 애국가, 고향예배, 구령3창으로 끝났다. 고향예배는 각자 자기 고향 쪽을 향하여 묵념하는 것이고, 구령 3창은 '열중 쉬어', '차렷', '받들어총'을 전방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침식사 끝나고 8시부터 10시까지 제식훈련을 하고 10시 정각에 입소식을 했다.
오후에는 군법, 군인복무규율 교육이 있었다.
군인복무규율의 교관은 우리 중대 구대장인 고중위가 담당했는데 이 시간에 자기 소개를 하며 매우 부드럽게 대해 주었다. 중앙대 학군단에 있다가 지난 7월에 파견나왔다 한다.
저녁에는 군가와 영화상영이 있었다.
9월 18일 일요일이다.
오늘은 유격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 속에 잔뜩 겁먹은 상태에서 유격장에 도착했다.
정훈 한 시간을 마치자, 호랑이 같이 무서운 유격 교관이 나왔다. 조를 편성하여 조교들의 인솔로 진행되는데 조교들은 더욱 고약했다. 두줄타기부터 시작하여 외줄타기, 종합장애물 통과 등 13개 코스를 돌아가며 모두 받았다.
외줄타기, 두줄타기가 좀 무서웠지 훈련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각 코스에 도착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전부 PT체조를 하는데 그것이 힘들었다.
코스 이동 중이나 훈련 중에는 '유격'이라는 구령을 하게 도어있는데 나중에는 지쳐서 그 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점심은 라면이었다. 군대에서 일요일점심은 라면을 먹게 되어 잇단다. 라면은 라면대로 찌고 스프는 스프대로 끓여 계란과 버터가 곁들여 나왔다. 이상한 냄새가 나고 맛도 없어보여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았으나 허기진 뱃속은 그것이라도 더 요구하고 있었다.
무사히 유격을 모두 마쳤을 때에는 모두가 목이 쉬어있었다. 그리고 오는 도중에 모여가는 태도가 불량하다며 175명의 1개 중대를 다시 구보로 유격장 쪽으로 돌려보냈다가 오게하였고, 밤에는 점호를 철저히 하여 11시 30분이 넘어서 지 구대장은 취침시켰다.
우리 중대 구대장은 고중위와 지중위 두 사람이 24시간 교대로 보고 있었다.
9월 19일 월요일.
경계훈련이다. 경계훈련당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제 유격장에서와는 달리 경계교장의 조교, 교관은 모두 부드러웠다.
오후 실습학과 출장 중에 벼베기를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설레어오고, 집 생각이 간절하다.
민간인이 몹시 그립다. 그 주위에 마을이라고는 연병장에서 보이지 않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나 있었지만 인구가 적어서인지 사람의 활동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가 밭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보게되면 참으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서늘한 실바람이 뺨을 스칠 적이면 무언가가 더욱 더 그리워졌다. 최한숙의 잘 갔다오라는 인사가 지금에 와서야 마음에 새겨진다. 모든 사람이 그리웠다.
밤에는 야간 경계훈련이 있었다. 달은 반달에 별은 총총하다.
저 달이 둥그러워지면 팔월 한가위요, 그 전날 우리는 퇴소하게 된다. 주위의 풀벌레 소리는 마음을 한층 더 설레이게 한다. 가끔 아련히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그렇게 그리웠던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군복에 철모를 쓰고, 조용한 산 속에 앉아 이 깨끗한 밤하늘을 욕심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본다.
9월 20일 화요일이다.
오전에 고중위의 분대전투대형이 있었는데 따뜻한 얘기, 지난 일요일 애인과 같이 본 영화 얘기 등으로 그 시간을 메꾸어 주었다. 오후에는 화생방 훈련이 있었다.
훈련장에 핀 코스모스가 너무도 다정스럽다.
마지막 코스인 가스실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눈물이 쏟아지고 고춧가루 같은 냄새가 나서 혼났다.
9월 21일 수요일이다.
날씨가 매우 쌀쌀해졌다.
PRI(Primary Rifle Inttoduction) 즉 사격술 예비훈련이다. 피가나고, 알이 베기고, 이가 갈린다는 은어가 붙어있다 한다. 곁들여 EDPS(전자정보처리시스템)가 음담패설이라는 은어가 있다고 교관이 설명해 준다.
말을 들으면 고된 훈련인 것 같은데 우리는 그리 심하게 받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교수, 학생들이 위문을 와서 빵, 사과 각각 2개씩 먹고 놀았다.
9월 22일 목요일이다.
마음 졸여오던 사격이다. 여기 입소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사격에서 0점 맞으면 내년에 다시 입소해야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들 긴장하여 자주 소변을 보러들 가JT다.
먼저 25미터 영점사격 ;9발이 있다. 나는 7조에 속해 맨 나중에 쏘았다. 3발씩 세 번 하는 것인데, 처음 쏜 3발 중 한 발이 표적의 검은 부분에 맞아 다행히 총의 위치까지 포복하지 않아도 되었다. 첫 3발 중 검은 부분에 한 발도 못 맞힌 사수는 교관의 지시로 그렇게 포복을 해야 했다. 그 뒤 6발과 맨 마지막 조인 덕분에 3발의 여분까지 받아 사격했으나 한 발도 못맞혔다.
오후에는 200미터 사격이다 7발 중 처음 4발은 연습사격이고, 나중 3발은 기록사격이란다.
7발 거의 다 표적 아래 땅에서 먼지가 일었다.
오늘도 그 지긋지긋한 점호를 받고 자야 했다.
9월 23일 금요일이다. 각개전투다.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편했으나, 코스에 들어가면 고통스러웠다. 그 '원위치'는 괴롭기 그지 없었다. 뚝 통과때 원취치를 열 번이나 당했다. 그 바람에 팔목과 팔꿈치가 조금 까졌다.
9월 24일 토요일이다. 각개전투 2일째이다.
어제 wjp 4교장의 조교들보다 오늘 제 3교장의 조교들이 더 까다로았으나 우리 조 5명은 원위치 한 번 없이 통과 되었다. 밤에는 야간 각개전투로 위장까지 하였으나 거의 놀다시피 하였다.
9월 25일 일요일이다.
오전에 귀순용사의 정훈 두 시간을 듣고, 정비시간이어서 청소를 하였다. 점심은 라면이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빵을 사서 먹고 말았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분대전투대형 실습 때에는 힘이 쭈욱 빠져 도저히 움직이기 싫었다.
모두가 그리웠다. 멀리 아련히 보이는 남산타워 앞으로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그동안 악날하게 굴었던 지중위가 오늘은 아침부터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잔인한 미소처럼 보였다. 저녁 식사 후에는 샤워를 시켜주겠다는 것이다. 내일이면 집에 가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 stkfka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 목욕하러 가야했다. 비좁은 샤워장에 수십명씩 몰아넣고 1분도 안돼서 내쫓아내고 다음 차례를 집어넣곤 하였다. 그것도 샤워기 겨우 하나 달아놓고 말이다.
식사 후 8시까지 휴식 겸 다과회를 가지라고 본부에서 전달이 왔건만 샤워 때문에 다과회를 늦게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지중위는 재량권으로 8시 반까지 오락시간을 갖게 했다.
종합행정학교 훈련소장 투스타가 취침상태를 시찰한다고 전 중대원은 9시 반에 취침에 들어갔다.
9월 26일 월요일이다. 화창하게 맑은 아침이었다.
시집살이 새댁이 친정가는 기분이랄까?
열흘 간의 훈련이 우리들 간에는 어느 새 추억처럼 이야기가 오갔다. 그 순간 순간의 시간들은 육체적으로 고되었으나 돌이켜 생각하니 정말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모두들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내무반을 완전히 빠져 나왔다.
오후 1시에 퇴소식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탔다.
차창으로 손을 주고받는 12중대 중대장, 고중위, 지중위, 멀리 본부 앞에서 군가대회 준비하다가 손을 흔들어대는 조교들, 정문에서 석별 송을 연주하는 군악대원들..
모두가 다 똑같이 다정다감한 인간이었음을 느끼면서 정문을 빠져나가는 차창에 몸을 기대본다,.
-병영 집체 훈련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