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설움
나그네의 설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창살에 부딪히는 빗발소리도 처량했거니와
만원버스 속에서 흘러나오는 옛노래 또한 더욱이나 처량했다.
비오는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얼핏 귀에 들어오는 옛노래가 구슬피 들린다.
정한 곳 없이 걷기만 해야하는 나그네의 설움.
그러한 나그네가 된 동기는 다를지언정 나그네가 되어 걸어야하는 설움은 같을 것이다.
아무 목표 없이 방황 속에 정처없는 시간을 뒤로 보내야 하는 나그네의 설움도 말이다.
음산하게 내리는 가을비에 선술집의 고기 굽는 냄새가 한없이 그립기만하다.
인생의 고락을 한꺼번에 파묻고 먼 옛날 옛 추억을 더듬어가며 설움을 달래고픈 비오는 날의 선술집은
나그네의 고향 같기도 하건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나그네이기에 비가와도 걸어야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 어디를 가는 지는 발길에 맡기고 올라탄 버스 속에서 그야말로 오랜만에 러시아워를 맛보기도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정처를 향해 가고 있으나 목적지 없이 탄 나그네는 어디에서 내려야 適地일까를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비오는 저녁 선듯 걸어보고픈 욕망도 약해져 이 버스 정점까지 왔다.
얼마간 걷노라니 가로수 늘어선 한적한 시골길이 나타났다.
가끔 오가는 자동차가 무섭기도 했다.
조그만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비가 덜 왔지만 온 몸은 비에 흠뻑젖어 있었다.
그래도 걷고 싶었던 것은 나그네의 심정에서 였을까? 당장 들어가고 싶은 곳은 눈에 보이는 주막이었지만,
그것도 안되는 형편이기에 그 설움도 크더외다.
<1978.10.27 학교에서 좀 울적하여 17번 버스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