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락
우리 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최근까지의 연구였다. 이에 비해 일본 학자들은 자신들의 벼농사 상한선을 서기전 1000년으로 잡고, 우리의 벼농사는 일본을 통해 전래된 것이란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마디로 개 풀 뜯어먹는 얘기인 것이다. 김포 일산 유적지에서 서기전 2400년대의 것으로 밝혀진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우리의 벼농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활발했음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벼농사는 오히려 우리에게서 건너간 것이라 하겠다.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보석신(사람 이름)이 죽자 머리는 '밀' 로 변하고, 눈썹에서는 '누에' 가, 눈 속에서는 '피'가, 사타구니(음부)에서는 '보리' 가, 뱃속에는 '벼' 가 자랐다는 일본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화는 이를 뒷받침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꿩 치(雉)' 의 '치희(雉姬)' 가 '벼 화(禾)' 의 '화희(禾姬)' 에게 사랑 싸움에서 패했다는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는 우리 역사에서 수렵시대가 끝나고 농경 시대가 정착된 사실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튼 미국의 언어학자인 클리핀저는 인도 드라비다 어에서 '벼' 를 '비야' 라 한다 했는데, 어쩌면 '벼' 란 말은 '비야' 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벼의 고향을 벵골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벼를 우리의 남부 방언에서는 '나락' 이라 합니다. 이 '나락' 을 철종때의 『동환록(東寰錄)』(1859)에서는 '나록(羅祿)' 으로 적고, 신라 시대에 녹(봉급)을 벼로 준 데서 생긴 말이라 하였으나, 이는 민간 어원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락' 이란 말은 '곡식의 알' 을 뜻하는 '낟' 에 접미사 '악' 이 붙은 '낟악' 이 '나락' 으로 변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보기엔 '꾸지람' 이 있는데 '꾸지람' 은 '구짇+암 -> 구지담 -> 구지람 -> 꾸지람' 으로 바뀐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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