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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좋아지면 임금이 오를까, 임금이 올라야 경기가 좋아질까
지금 한국 경제는 낮은 임금상승률로 인해 근로자들이 지갑을 닫아 내수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국내외 많은 연구 자료들이 임금 인상이 경기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임금이야”가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과제다.
명절이다. 돈이 풀리고 돈다. 돈이 돈다워지는 시기. 세뱃돈으로, 부모님 용돈으로, 제수 비용에 갖가지 선물 값까지 나갈 돈은 많다. 하지만 빤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통 크게 명절 기분 내기란 쉽지 않다. 경기 성남의 한 방위산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임모씨(39)는 명절 지출계획을 두 가지로 세웠다. 회사에서 나오는 명절 ‘떡값’이 얼마냐에 따라 플랜 A와 B가 있다. 자녀와 조카들 세뱃돈부터, 들고 갈 선물이 한우 세트일지 과일 바구니일지가 결정된다. 최악의 경우도 있다. 지난해 추석처럼 50만원밖에 안 나오면 아무리 줄여봐야 본전도 못하고 마이너스가 된다.
“그렇게 되면 다음달부터 한동안 손가락 빨고 살아야죠.”
임씨의 말에 한국 경제의 현실이 함축돼 있다. 바로 낮은 임금이다. 이미 가계부채는 1100조원대로 진입했는데, 가계소득은 늘지 않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2014년 3분기 0.08%(전년 동기 대비)까지 떨어졌다. 임금수준이 수년째 그 자리에 묶인 탓에 실질임금은 아직 2007년 수준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에도 밑도는 임금상승률이 내수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생계비와 비교하면 임금이 얼마나 낮은지를 체감하게 된다. 한국노총이 지난 1월 발표한 표준생계비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의 평균적인 지출 내역을 토대로 구성한 생계비 내역이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이 있는 4인가구의 월 표준생계비는 556만원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총액은 312만원이었다. 혼자 벌어서는 표준생계비에도 맞추지 못한다. 둘이 벌어야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의 임금수준이다.
GDP 성장률에 못 미치는 임금 상승률
표준생계비는커녕 통계청의 지난해 2분기 기준 4인가구 가계지출액에도 못 미친다. 한 달에 399만원에 달하는 가계지출을 가구당 노동인구 1명이 감당하려면 매달 꼬박꼬박 88만원의 적자를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올해 최저임금은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급으로 환산해 116만6220원이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4인가족 기준 최저생계비는 월 166만8329원, 3인가족은 135만9688원이다. 최저임금 노동자 가구는 그야말로 최저한의 생계를 꾸리는 것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가구원이 2명 있어도 평균적인 가계지출액의 약 58%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다. 단순 액수로 따지면 식·음료비의 경우 세 끼 중 한 끼만 먹어야 현재의 평균 가계지출 액수에 맞출 수 있다.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어들면 경기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다. 악마의 순환에 빠져드는 것이다.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임금인상을 통해 소비를 늘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면 된다. 역발상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연방정부 차원의 최저임금 인상을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는 임금을 높여야 시장의 수요가 살아나고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임금주도 성장론이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0.1달러로 높이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비록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 의회의 반대로 행정명령의 효과는 연방정부와 관련 공공부문에만 한정됐지만 임금상승과 경기회복의 신호는 미국 전역에서 나오고 있다.
오바마, 최저임금 인상 행정명령 내려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전후해 각 주와 지자체에서도 개별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움직임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1%대 후반에 머무르던 미국의 임금상승률은 최저임금 인상 바람을 타고 연말 2.9%까지 오른 상태다. 미국 전역의 임금상승 현상은 지난해 10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완화 종료 선언과 함께 경기회복의 신호탄으로 간주되고 있다.
임금상승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독일도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단지 임금이 오른 것만으로 경기회복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임금주도 성장론자들은 임금을 높이려는 정부의 정책이 국가경제의 전체적 측면에서 자본의 순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순행성이라는 개념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호황과 불황을 되풀이하는 경기의 흐름에 따라 임금수준이나 대출규모 등도 따라서 움직인다는 의미다. 경기가 좋아지면 돈이 많이 풀리고 투자와 창업도 활발해진다. 따라서 임금도 올라간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임금이 오르면 노동자인 소비자들이 쓸 돈이 많아지니 다시 호경기가 이어진다. 사실상 경기와 임금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국내외의 많은 연구자료들은 이처럼 임금인상이 경기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리키고 있다.
부동산 활성화 정책이 가계소득 높일까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실질임금 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및 노동생산성 증가율 간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임금상승이 경제성장과 생산성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가 나왔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경제학)가 지난해 12월 경제발전학회에 기고한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 논문이 그것이다.
홍 교수는 이 논문에서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기간에 실질임금 증가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0.68~1.09%,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0.45~0.50%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임금이 오르면 전체 소득 중 자본소득의 비율은 줄고 노동소득의 비율(노동소득 분배율)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 임금상승은 기업의 자본소득 저하로 이어져 고용까지 줄인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홍 교수의 연구는 이런 통념을 뒤집어버렸다. 노동소득은 자본소득보다 소비로 이어지는 경향이 더 높아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개별 노동자 김씨는 받은 월급으로 생활에 필요한 소비를 하며 돈이 돌고 도는 데 일익을 담당한 반면, 김씨를 고용한 기업은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실질임금이 1%포인트 오를 때 고용 역시 0.22~0.58%포인트 오른다는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아직 이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을 지휘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정부가 앞장서 발표한 대책도 겉으로는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경제성장 및 경기 활성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최 부총리 취임 이후 나온 대표적인 경제정책인 부동산시장 활성화 방안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봐선 실질적인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명 ‘초이노믹스’의 대표적 정책은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70%와 60%로 완화하는 부동산 규제완화책이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높이며 ‘자산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전체 가계 중 부동산 소유 가구, 특히 수도권 아파트 보유 가구에만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특성 때문에 전체 경기 진작에는 효과가 미미했다. 가계소득의 76%가 임금소득인 데 비해 부동산 등 자산소득의 비중은 7%에 그친다. 때문에 애초에 가계소득 증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홍장표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생활임금 도입 등 임금소득을 높이는 것이 경제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정책도 이런 쪽에 집중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약 23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들 법 밖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감독을 강화해도 더 많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임금을 올리는 데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가 직접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금을 지급하는 절대다수의 고용주는 일반 사기업이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까지 고용을 담당하는 쪽과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임금수준을 높일 수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인 ‘알바몬’의 최저임금 광고에 자영업자들이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정규직만 개선해도 임금상승 탄력
일본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 간접적인 방안을 쓰는 대신 정부가 직접 기업에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대표적 정책인 통화량 확대 정책만으로는 경기가 예상만큼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2013년부터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노·사·정이 참여하는 임금 대책회의에 관여한 끝에 지난해 12월에는 사용자단체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 회장까지 나서 호응하는 분위기다. 임금상승이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장면이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국의 재계와 사용자단체는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임금주도 성장론에 대해 종래의 입장을 들며 현 시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취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대기업을 비롯해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까지 투자나 신규고용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강해져도 그에 응할 개별 기업이 현실적인 여력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면 고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오히려 더 큰 사회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이중고를 겪는 비정규직 문제만 개선해도 임금상승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내하청과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규모는 알려진 바와 달리 162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다. 20대 재벌만으로 한정해도 2009년 이후 4년간 사내유보금은 82.6% 늘리고, 실물투자액은 70.9% 줄였다. 낮은 임금에 바탕을 둔 대기업 경영이 실물투자에는 인색하며 돈을 쌓아둔 탓에 경제 전체의 자금 흐름에는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비정규직 대책이 대기업에만 집중돼도 임금상승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다는 분석이다. 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실적이 부진하다며 손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려는 등 아직도 기업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임금상승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려는 국제적인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을 일소하는 등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최저임금을 내년까지 평균 급여의 50%인 시간당 8000원으로 맞추는 쪽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총수요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가계에 소득이라는 ‘성장 연료’를 주입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병권 부원장은 임금주도 성장론은 시장의 원리를 넘어서 정치·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임금주도 성장전략은 임금 몫을 증가시키고 최저임금을 제도화하여 임금 격차를 감소시키는 분배정책, 사회 안전망을 강화시키는 정책과 함께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
저임금·소비위축의 악순환에 빠지느냐, 임금상승을 통한 경기회복을 도모하느냐.
답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출처 :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502171112051&code=114&s_code=n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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