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다음그다음

완행열차 본문

白 樺

완행열차

다음그다음 2008. 3. 6. 16:10

완행열차

 

서울행 완행열차는 땅거미 속을 누비고 있다.

평택역에 서 날품팔이의 노동자로 보이는 세 명의 아저씨들이 탄다.

전 정거장에서 내 옆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내려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그 자리에 한 아저씩가 앉고, 앞 빈 자리에 두 아저씨가 앉는다.

 

앉자마자 술병을 꺼낸다.

하루의 고달픈 일을 마치고 저녁 퇴근길에 완행열차 안에서 마시는 술은 그 분들의 얘기에 의하면 유일한 낙이라 한다.

술에 취하고서는 사소한 말로 싸운다.

48세된 아저씨와 59세된 아저씨가 싸우는 것이다.

 

59세 아저씨가 48세 아저씨에게 반말 한마디 한 걸로 시비잡아 계속 싸워 나중에는 주먹가지 들먹였다.

48세 아저씨는 시집간 딸이 있는 사람에게 반말한다는 걸로, 59세 아저씨는 늙은이가 젊은 사람에게 그랬기로서니 대들어야 옳으냐는 걸로 팽팽히 맞섰다.

 

그러다가 어떻다할 승부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속으로 응얼대는 것이다.

같은 일자리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몽땅 취해서 사소한 말오 같이 트집잡아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어떻다할 시비도 가리지 못한 채 어로가 적수가 되어 같은 수원역에서 같이 내려 각각 자기집으로 헤어졌다가 내일이면 같은 일자리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시비를 가리기 위한 싸움을 안 게 아닐 것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는 너무나도 따분한 동료 사이였기에 열차 안에서의 무료함을 자연스레 해소하려 함이었을 게다.

인생 하루 하루의 삶이 고달펐기에 그들은 술을 마셨고, 술을 마셨기에 그들은 싸워서 고달픈 퇴근길의 무료함을 달랜 것이었을 게다.

 

-- 1975년 11월 5일 주민등록 발급차 상경하며 --

 

'白 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양의 막사(문무대일기)   (0) 2008.03.08
面牧洞 아가씨  (0) 2008.03.07
불암산장 小考  (0) 2008.03.03
내마음을 내가 쓸줄 알아야..  (0) 2008.02.24
씨받이와 씨내리  (0) 200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