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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본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1] 원문과 풀이
公無渡河(공무도하)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당내공하) 이제 임이여 어이할꼬.
[2] 요점정리
작자 : 백수광부의 아내
(원작자는 백수 광부의 처이며, 곽리자고의 부인 여옥이 이를 노래로 정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가사명일 경우 '공무도하가'로, 곡조명일 경우 '공후인'으로 구분한다.)
연대 : 고조선(古朝鮮)
갈래 : 갈래 : 개인적 서정시, 한역가(漢譯歌):4언 4구체의 한역시가)
별칭 : 곡명으로는 '공후인'이라 함
어조 : 여성적 화자의 탄식과 원망과 애절한 울부짖음과 체념적인 어조
성격 : 직서법으로 직정적(直情的)이고, 절박한 호소의 절규적 표현, 비극적, 애상적, 체념적
소재 : ‘강’ 또는 ‘물’
주제 : 임을 여읜 슬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함,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을 애도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함. 임과의 사별로 인한 슬픔
의의 :
① ‘황조가’와 함께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서정 가요.(문헌상 가장 오래된 서정시)
② 집단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 작품.
출전 : 해동역사권 22 악가 악무조
[3] 해 설
임을 잃은 슬픔을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국문학사상 최고(最古)의 서정시로서 악곡명을 따라 '공후인'라고 도 하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데, 한 백수 광부(白首狂夫 ; 머리가 허옇게 센 미친 늙은이)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술병을 들고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 뒤를 그의 아내가 따르며 말렸으나 미치지 못해 그 백수 광부는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뜯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 목소리가 아주 구슬펐다. 노래가 끝나자 그의 아내 역시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러한 광경을 처음부터 목격한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 또한 슬퍼하면서 공후를 뜯으며 그 노래를 불렀다.
그 후 여옥은 이웃집에 사는 여용(麗容)에게 이 노래를 전하여 결국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 노래를 이름하여 '공후인'이라 불렀다.
이 노래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여인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남편의 죽음을 보고 뒤따라 죽는 아내의 모습에서 정렬(貞烈)의 한국 여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를 한(恨)이라고 한다면, 이 노래는 우리 나라 서정시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한국적 정서인 한(恨)의 원류(源流)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배경설화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의하면 최표의 ≪고금주≫에 기록된 이 노래의 배경설화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涇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외치며 막았으나, 다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謙隸)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는 심히 구슬펐다. 그의 아내는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전하니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이 노래는 채록자·채록양식·창작지역 등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대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창작지역인 중국의 직례성 조선현(直酪省 朝鮮縣)이 고조선 이래로 한인(韓人)들이 잔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양식을 유지하던 곳이어서, 〈공무도하가〉의 원작자가 반드시 중국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즉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원작자는 충분히 우리나라 사람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점에서 〈공무도하가〉를 우리의 고대가요로 보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중국 쪽에 이런 노래가 전해지고 기록된 것은 우리 노래가 그만큼 널리 전파되어 있었던 증거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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